여기서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것은요, 주변의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아야 돼요. - 정혜신
- YoungKon Joo
- 2020년 5월 13일
- 2분 분량
"트라우마라는 상처의 본질이 뭐냐면요, 내가 이전에 살던 곳에서 갑자기 시공간을 초월해서 심리적 오지로 이동을 한 거죠.
내가 어느 상황에 처해있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주변이 다 낯설고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인 거죠.
우리가 이전에 살던 상식이나 표준, 기준 이런 것들이 다 아니라 하고 금지가 되고 위험한 것이라 하고, 옛날엔 좋았던 것들이..
그러면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한 달 후나 일년까지 버텨야 될 지도 모르는 심리적 오지에 떨어져 있을 때, 여기서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것은요, 주변의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아야 돼요.
예를 들어서, 강의를 하는 분이 대규모 청중을 모을 수 없으니까 수익이 제로다... 뭐 이런 분들이 주변에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재기하게 되면 그때 강의를 다시 하기 위해서 강의안도 다시 만들고.. 지금 쉬고 있으니까, 일이 없으니까 너무 불안하니까 뭐라도 하는 거죠.
그런 노력들을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
"그럼 다음 강의를 위한 준비 같은 것도 의미가 없어요? 그걸로 회복이 안된다?"
"불안을 통제하기 위한 어떤 방편이지, 그것의 실제적인 효력이 있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죠. 왜냐하면 앞으로 벌어지는 사회 룰이나 가치나 이런 것들이 예전과는 다른데, 우리는 예전에 준해서 무언가를 자꾸 하고 있으면서, 그러다가 자꾸 안되다 보면 자책하게 되고 진이 빠지고 더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고, 그렇게 되는 거죠."
"가만히 움직이지 마란 얘기면 뭘 하란 얘기예요. 아무 것도 하지 말란 얘기예요?"
"그런 뜻은 아니고요.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는, 노느니 장독 깬다고. 말하자면 그 주변이 어딘지도 모르고 낯설고, 한 발 디디면 여기가 낭떠러지일지도 모르고 늪으로 빠질 지도 모르는데, 움직이다 보면 거기서 나오기 위한 에너지 소모를 더 해야한다는 거죠. 일단 가만히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될지, 어떤 세상이 올 지, 어떤 상황이 나에게 펼쳐질 지 기다리고 버텨야되는데, 불안하니까 버티기가 어렵거든요. 그때 버티려면 자기를 축내지 않아야 돼요. 자책하지 않아야 되고, 이것의 원인을 자꾸 나한테서 찾는 것을 멈출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중략)
"박사님은 코로나를 통해서 배운 게 있으세요 혹시?"
"코로나가 우리가 살아왔던 삶을 통째로 성찰하게 만들잖아요. 인간이 하지 못했던, 말하자면 우리가 자연과 동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속도, 성장.. 그런 것들에 우리가 굉장히 익숙해졌다는 것. 이런 것들이 어떤 경우보다 강력하게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느껴지죠.
이런 것을 어떤 소수가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전인류가 공감대를 갖는 것은 어마어마한 자산일 수 있다... 그 과정 중에 죽지 않아야 하니까, 그것을 위해 우리가 같이 연대하는 게 필요할 거라 생각해요."
"인류 전체가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한 집단 반성의 시간이네요. 근데 서로 집단 반성하다 죽으면 안되니까, 손 잡아주고 버티게 해주자.."
"네."
"그런 깊은 성찰을 전 지구인이 공감한다면, 그럼 코로나가 우리한테 큰 선물 준 거예요."
"네. 그렇게 살아간다면 치유의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겠죠."
-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코로나 19, 신인류 시대 :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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