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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의 설정, 테드 창의 경우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20년 4월 19일
  • 2분 분량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반려로봇을 섹스로봇 회사에 보낼 수 밖에 없는 한 남자의 윤리적 딜레마. 무릎을 치게 만들었던...

(전략)

얼마 전 애나가 한 주장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디지언트들에겐 연애관계나 직업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바이너리 디자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고 했다. 디지언트들을 인간 어린아이 같은 존재로 간주한다면 이치에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데이터어스에 갇혀 있는 한 -그들의 삶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한- 이렇게 중차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디지언트의 성숙의 기준은 인간만큼 높이 설정되어선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르코는 이번 결단을 내릴 만큼 충분히 성숙해 있을지도 모른다. 마르코는 자기 자신을 인간이 아닌 디지언트로 여기는 것에 전적으로 만족하는 듯 보인다. 자기가 한 제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데릭은, 실제로는 마르코가 자신의 본성을 데릭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마르코와 폴로는 인간이 아니므로, 그들을 마치 인간인 척처럼 간주해, 있는 그대로 놔두지 않고 데릭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잘못일지도 모른다. 마르코를 존중하고 싶다면 그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런 철학적인 문제는 나중을 위해 미뤄놓았겠지만, 이번만큼은 데릭이 당장 내려야 하는 결단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만약 데릭이 바이너리 디자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애나는 폴리토프에 취직할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마르코의 뇌에 화학적 조작이 가해지는 게 나을까, 아니면 애나가 자기 뇌를 약물에 노출시키는 게 나을까?

애나는 폴리토프의 제안에 응하면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마르코의 경우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애나는 인간이다. 데릭에게 마르코가 아무리 멋진 존재라고 해도, 그에게는 애나 쪽이 더 소중하다. 둘 중 하나에게 신경화학적인 조작이 가해져야 한다면, 애나가 아닌 쪽이 낫다.

데릭은 바이너리 디자이어가 보내온 계약서를 화면에 불러온다.그런 다음 마르코와 폴로를 각자의 로봇 외피 속으로 부른다.

"계약서 서명할 준비 됐어?" 마르코가 묻는다.

"단지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고 이런 일 해선 안 된다는 거 알지?" 데릭이 말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일 때만 해야 해." 데릭은 이렇게 말하고는 정말로 그럴까 하고 자문한다.

"그렇게 계속 안 물어봐도 돼." 마르코가 말한다. "난 예전하고 똑같은 기분이야. 하고 싶어."

"넌 어때, 폴로?"

"응. 찬성."

디지언트들은 기꺼이, 아니 열렬히 그러고 싶어한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순전히 이기적인 관점에서.

애나가 플리토프 사에 취직한다면, 그녀와 카일 사이에는 균열이 생겨날 것이다. 그 사실은 데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훌륭한 생각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반면에 그가 바이너리 디자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번에는 그와 애나 사이에 균열이 생겨날 것이고, 언젠가 그녀와 맺어질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린다. 그걸 포기할 수 있을까?

애당초 애나와 맺어질 기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데릭은 몇 년 동안이나 자기 자신을 속여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환상은 졸업하는 게 낫다.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헛된 희망으로부터 해발될 수 있으므로.

"뭐 기다리고 있어?" 마르코가 묻는다.

"아무것도 아냐."

디지언트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바이너리 디자이어 사가 보낸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제니퍼 체이스에게 보낸다.

"나 언제 바이너리 디자이어 가?" 마르코가 묻는다.

"그쪽 서명이 된 계약서가 도착하면, 네 스냅숏을 찍을 거야. 그런 다음 그걸 바이너리 디자이어로 보내면 돼."

"오케이." 마르코가 말한다.

디지언트들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흥분된 어조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데릭은 애나에게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그녀를 위해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기를 위해 마르코가 희생됐다고 생각하면 애나는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이것은 데릭이 내린 결정이므로 차라리 애나가 데릭을 비난하는 편이 낫다.

(후략)

- 테드 창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중에서

선이S에 반드시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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