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쓰레기를 버리다가
- 2020년 3월 2일
- 2분 분량
남은 음식들을 봉지에 담아 버리는 게 귀찮았다. 솔직히.
또 한 편으론 어릴 때 할머니 기억이 나서였다.
올해 99세인 할머니는 늘 음식 쓰레기를 옥상 바닥에 널어 바짝 말린 뒤에 버리곤 했다.
"할머니. 왜 음식 쓰레기를 말려서 버려요?"
내 질문에 할머니가 대답했었다.
"그래야 냄새도 안 나고, 봉투도 줄이니까."
최근에 난 음식 쓰레기를 옥상 화분에다 버리는 중이다.
아마도 이 짓을 6개월 가까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바람에 내 옥상은 동네 비둘기들의 맛집이 되어버렸다.
그들과의 첫 만남은 하나의 사건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어느날 화분 주변이 아주 개판이 되어 있길래
동네 길냥이 짓인가...했다가
우연히 그 범인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버린 음식 쓰레기들을 쪼아대고 있었다.
색이 혼탁한 한 마리의 비둘기였다.
'왜 저걸 먹고 있지?'
생각해보니 그럤다.
내가 방금 먹은 음식들은, 당연히 깨끗한 상태일 것이다.
그걸 둘기가 먹고 먹다가 도저히 삼키기 힘든 음식들만 부리로 내다 던진다.
그 남은 것들이 옥상 바닥에 온통 널부러져있다. 관찰해보니 대부분은 덩어리가 크거나 자극적인 음식 찌꺼기들이었다.
그 바람에 하루는
혹시 양념 같은 것들이 해로울 걸 알아서 그러나...싶어
싹싹 씻어 버리다보니 손님들의 반응이 꽤나 좋았다.
화분이 싹 비어있었다.
어라?
그래서 된장이나 카레 같은 음식에서 남았던
덩치 큰 감자나 당근 같은 것들을 깨끗히 씻어 잘게 썰어 줘봤더니,
오! 싹 비어있었다. 역시...
그렇게 단골들이 점점 늘어갔던 것이다.
오호라? 싶어 요샌
남은 족발에 치킨 같은 큰 고기들마저도
싸악 씻어내 먹기 좋게 손으로 찢어 줘봤더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올 때마다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야! 여기 고기도 씻어줘! 빨리 와봐.
구르륵 구르륵 거리며 잘도 먹어댄다.
새끼를 벤 암컷들도 꽤나 자주 찾아오는 중이다.
물론, 돈도 지불하지 않고 또 별점이나 엄지 이모티콘을 달아주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참 풍요롭다.
어차피 버릴 음식이었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도시의 집집마다 어떤 관이 연결되어 있고
그곳으로 남은 음식을 버리면 자동으로 세척되며
다른 생명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속히 배달되어 골고루 흩뿌려진다.
먹지 못하는 음식들도 자동으로 걸러져 다른 곳으로 배달된다.
아마도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그건 쓰레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소설에 넣어야지.'
요샌 얘네들이 하도 자주 찾아와서
이웃집 분이 한 번 나눠줘보라고 내게 준 고양이 사료에다
이따금 줄 게 없을 땐 내가 먹을 생쌀까지 나눠주곤 한다.
잘 먹는다. 마음이 참 좋다.
하필 이처럼 많은 생명들이 멸종해가는 이 시대에...
하나 걱정이 드는 건, 내가 주면 무조건 다 받아먹기 시작했다는 건데,
그나마 걱정이 덜 한건, 올 때마다 깃털 색이 확실히 좋아져 있다는 것이다.
그간 얼마나 나쁜 걸 먹고 살았으면... 싶을 때도 있다. 솔직히.
아마도 우리가 꽁꽁 묶어 잘 버린, 썩어가는 음식들은 아니었을까?
해안에 죽어있던 거북이 해부 영상을 기억한다.
뱃속에 비닐봉지가 가득 했었다.
물고기와 바다새들은 여전히 반짝거리는 것들을 집어삼킨다.
우리가 만든, 또 버린 플라스틱 알갱이들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또 버리며 사는 걸까?
미안한 일이다.
오피스텔이랑 아파트 같은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더 미안해진다.
아마도 이런 감정조차 잊고 살 것 같아서.
그러면서 나도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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