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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옥은 신의 부재'를 읽고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20년 2월 25일
  • 1분 분량

고작 몇 페이지의 단편 소설을 읽으며 책장을 얼마나 자주 가슴에 파묻었었는지...

아....

그러면 나는 페이지를 접고 또 접는다.

어제는 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엊그제 접었던 책장을 한 구절 펼쳐서는 친구에게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그러자 친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책은 접으면 안되잖아. 소중하게 읽어야지. 왜 책을 접는 거야?"

"이건 일종의 나침반이야.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맞다. 나는 책을 접으면서 읽는다.

내가 아는 이들 중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어떤 친구의 독서 습관을 따라하면서부터...

왜 책을 접으며 읽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가 했던 말.

"책을 다 봤을 때, 읽기 전보다 그 책이 두꺼워져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만큼 많이 접으며 읽었다는 뜻이니까, 그만큼 내가 잘 읽었다는 증거니까."

중간 중간 내 인생을 스쳐간 다른 작가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만큼 많이 접어가며 읽었던 책은 보르헤스의 '알레프' 이후론 처음인 것 같다.

알레프 역시 얼마나 많이 접고 또 멈추며 책을 읽었었는지...

좋은 책에는 반드시 여백이 있다. 멈출 수밖에 없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숨을 쉬게 된다.

생각들도 함께.

한 번은, 알레프를 읽다가 너무 아까웠던 바람에

곧장 버스에서 내려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책을 읽어나갔던 적도 있었다.

테드 창의 이야기들 중에서 다른 작가를 거론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가 바로 보르헤스여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잊고 있던 친구의 소식을 전해들은 기분이랄까.

잘 가고 있어. 친구.라는 일종의 응원같달까...

그런 응원 속에도 반드시 여백도 있고 휴식이 있다.

잠시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혼의 한 숨이랄까.

'알레프'도 그랬지만,

'지옥은 신의 부재' 역시

이성적 사고를 훌쩍 뛰어넘는, 감동적인 사유가 있다.

감히 '영혼의 울림'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잠시 빌려도 된다면,

나는 거기에 더해 '깊고 고요한'이란 수식어를 더해 이 이야기를 향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내 작은 방 어딘가에서 그보다 더 작은 깃털 하나가 내려와 내 손 위에 앉았다.

마치 어떤 메시지처럼.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작지만 위대할 지도 모를 이 메시지를

테드 창을 소개해준 모든 이들에게,

또,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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