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을 읽고
- YoungKon Joo
- 2020년 2월 17일
- 1분 분량
테드 창의 단편 '바빌론의 탑'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스피커에서는 아르보 파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이 흘러나오고 있다.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공통점을 가진 두 작품이,
지금 내 방 안에서 그 경계를 뭉뚱그리며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SF 소설을 한 편 준비중이다. 첫 도전이다.
그 시작을 알렸던 무작위적인 마음처럼,
믿을만한 친구들이 선물해줬거나 추천해준 책들을 무작위적으로 쌓아놓고선 어제서야 거의 다 읽은 참이다.
그 독서의 여정 끄트머리에, 두 사람의 책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테드 창'과 '장자'
아...
진작에 수미상관 형식의 이야기를 좋아하던 터였지만, 테드 창의 이번 이야기는 좀 달랐다.
언제였더라? 우연히 보았던 어느 작가의 경고,
'설마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붙이려는 초보같은 실수를 너는 하지 않을 테지?'
그렇다면 테드 창은 초보란 말인가?
어릴적부터 나는 수레바퀴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바퀴 한 쪽에 점을 찍어두고선 그 바퀴를 빙그르르 한 차례 돌리면 그 점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만약에 그 바퀴가 바닥에 닿아있어서, 어떤 궤적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건 처음과 끝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과연 수미상관이라 말해도 괜찮을 걸까?
테드 창은, 이제껏 우리가 전혀 다른 지점이라 생각한 개념의 양끝을 단숨에 연결지어버렸다.
그것도 아주 쉽고, 또 친절하게.
가만 보니 그러네.
나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상하게 끌렸던 푸앵카레의 추론, 또 그 매듭을 푼 페렐만의 증명, (아니. 풀어졌던 매듭을 묶어버린 페렐만이란 표현이 더 맞겠다.)
그리고 쌩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지금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 게다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는 장자의 '호접지몽' 또한 결국엔 서로 닮은 꼴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그들은, 또 나는 떨어져있는 것들을 자꾸만 붙이려고 하는 걸까?
잘못 붙이면 그것은 울타리가 되어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가둬버릴 지 모르는데도.
자유.
그럼에도 테드 창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하게 말이다.
거기에는 어떤 거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더 멀리가면 위험하다는, 그만 나가고 어서 집으로 돌아와...라는
호기심 많은 아이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모성이 숨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테드 창의 메시지가 꼭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소재 역시 바빌론의 탑으로 정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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