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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명함을 거절했을까?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20년 2월 17일
  • 2분 분량

버스 안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서던 리치 3부작의 마지막 권, '빛의 세계'가 막바지를 향해가는 중이었다.

극 중 인물들이 갖고 있는 느낌, 뭔가 거대한 생명체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알 수가 없다는 바로 그 느낌이, 누가 뒤통수를 세게 때리기라도 하듯 단숨에 아차! 하며 찾아왔다. 소름이 돋았다.

만약 내가 현미경을 통해 어떤 세포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우연히 어떤 계기로 서로의 관점이 전복되는 바람에 불현듯 내가 그 세포의 입장이 되어버린다면... 그 상태로 현미경을 관찰하던 나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면, 꼭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시선은 책에 고정한 채로 그 느낌을 잠시 그려보고 있는데, 까만 모자와 까만 코트에 까만 부츠, 심지어 마스크마저 까만 색을 착용한 60대 정도의 어느 중년 여성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보기에 내 차림이 특이했는지, 또는 내 인상이 편하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몇 번 정도 나를 곁눈질로 흘끔거리더니 이윽고 명함을 한 장 건네주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증인.

나는 곧장 편견에 사로잡힌 바람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중히 미소로 거절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 전철 역으로 걸어가며 생각하는 중이다.

꼭 그렇게 거절했어야 했나... 명함 한 장 웃으며 받아주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이었나...

오래전, 길에서 전단지를 받아주는 행위에 대해 친구와 장시간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웃으며 받아주는 쪽이었고, 친구는 웃으며 거절하는 쪽이었는데, 그 거절의 이유가 범지구적인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즉, 금세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될 불필요한 전단지를 만약 우리가 받지 않는다면, 그 종이는 반드시 필요한 이들에게만 알아서 잘 나눠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라면 논리였다.

나는 반박했다. 어차피 생산된 양들은 어딘가에 버려져도 버려질 것이라고 말이다... 친구는 엔트로피 이론까지 끄집어내며 내 논리를 다시 반박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나의 어린 시절 고백으로인해, 운이 좋게도 우리의 뜨거운 토론은 언쟁으로 번지기 전에 막을 내렸다.

"글쎄다. 난 잘 모르겠다. 근데 예전에 전단지 알바를 한 적이 있었거든. 해보면 아는데, 전철역 앞에서 전단지를 내밀고 서 있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눈도 안마주치고 손이나 몸을 툭 밀치면서 지나가버리곤 하거든. 어느순간 괜히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 들더라고. 단지 내 일을 할 뿐이었는데... 근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괜찮아. 힘내.'라고 말해주듯이 해맑은 미소로 전단지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꼭 한두 명씩은 있었거든. 난 그런 사람이 되고팠던 것 같아."

그래서,

난 왜 명함을 거절했을까...

그 아주머니에겐 분명 그 종교가, 그 명함 한 장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믿음이자 또 어쩌면 존재의 이유 그 자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이단이 아닌 걸까?

과연 우리 각자가 믿는 신들은 모두 올바르기는 한 걸까?

그렇다면 그 올바름은 과연 누가 정의하는 것일까?

요새야 먼 옛날 끔찍했던 그 시절처럼 인신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뜯어먹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무엇이 그리 올바르고 잘 나서 고작 한 여성이 건네준 명함 한 장을 받아주지 못해 거절했나...

반성하는 중이다.

나눠줄 모이도 없는데 비둘기들이 자꾸만 내 발 앞으로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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