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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전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20년 2월 14일
  • 2분 분량

그곳에서 전

"위험하니 내려가지 말거라."

라는 어머니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마음 속에 호기심을 가득 담아 아래 동네로 내려갔어요.

엄청난, 정말이지 그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죠.

쏟아지는 빗물이 80년대의 여느 달동네 분위기와도 같은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잠기던지, 도망다니다 언뜻 마을을 되돌아 보았을 때의 느낌은 마치

갑작스런 홍수에 마을이 잠기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강물의 급류 사이 사이로 지붕들이 솟아오르는 느낌과도 같았죠. 많은 것들이 물에 잠기고 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전 집을 향해 가파른 길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다니던 길들도 점점 강물이 되어가며 제 역할을 잃어가고 있었죠.

이따금 급류에 휩싸여 목숨을 잃을 뻔도 했지만, 아마도 꿈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랬던지, 하도 철이 없어 그랬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모험이 마치 신나는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즐겁게

마을 곳곳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저는 달동네 마을 꼭대기로 돌아갔습니다.

빗물에 잠기지않은 집은 평화로웠습니다.

그 집은 1층짜리 낮은 건물이었는데, 가장 왼쪽에 아버지와 형의 12평짜리 작은 화실이 있었고 그 우측에 또 12평 짜리 화방, 또 그 우측엔 12평 정도가 뚫려있는 채로 거기에 복도와 화장실, 창고들이 마련된 모습이었죠. 화방은 건물주 아들이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땐 비가 너무 많이 와 문을 닫은 채로 영업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복도를 지나 건물 뒤로 나가보니, 건물의 가로폭과 같은 정사각형 모양의 마당이 있었고, 그곳은 온통 흙이 깔린 채로 드문드문 관목들이 올라와 있었으며 그 사이로 큰 소나무들이 몇 그루 자라있는,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작은 산의 모습과도 같았죠.

그 땅을 지나가자 처마가 달린 1층짜리 일반 가옥이 한 채 나왔는데, 그곳에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이었죠.

어머니의 표정은 마치 그 집의 분위기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웠습니다.

전 마루 끝에 걸터앉은 어머니 곁에 조용히 앉아서는 그녀와 함께 비 내리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간 이어지던 침묵을 깨뜨리며 혼잣말을 하듯 전 어머니께 말했죠.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그저 먹다 남은 씨앗을 툽툽 마당에 내뱉기만 했어도 그 중에 어떤 녀석들은 잘 자랐을 텐데 말이죠."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 그런 걸 원치 않으셨단다. 자연 그대로, 그저 자신이 묻힐 작은 땅이 필요했던 게지."

이윽고 비가 그치지 시작했고, 세상은 온통 그윽한 안개들에 휩싸여 한 폭의 묘한 동양화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죠.

저는 비 개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갤 숙여 젖어있는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곳엔 건물주 할아버지가 묻혀계셨죠. 저는 생각했어요.

'왜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셨으면서도 굳이 관에 들어가 묻히셨을까...

그저 죽은 몸뚱아리 그대로 묻혀 벌레들에게 고루 나눠줬으면 더 좋았으련만...'

그렇게 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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