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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19년 10월 26일
  • 2분 분량

온통 붉은 행성이 있다.

대지엔 빠알간 흙먼지 밖에 없다.

강이나 바다는 당연히, 심지어 솟아오른 산도 하나 없이

그저 이곳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지 만이 차분히 가라앉아 조용히 쉬고 있는 듯 하다.

이따금 강렬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곳의 대기마저 온통 붉게 물들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황혼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생명 하나 없을 것 같은 이 땅 어딘가에

듬성듬성 새 발 모양의 발자국들이 있다.

그것을 따라가보면...

마치 비누방울처럼, 움직일 때마다 알록달록 색깔이 움직이는 형태의 어떤 갑옷..

같은 것을 착용한 어느 생명체가 행성을 두리번 거리며 유영하듯 걸어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형태와도 조금은 흡사하지만 그 팔 길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이 실제 신체 비율의 차이인지 아니면 독특한 갑옷의 용도에 의한 차이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우리가 흔히 보아온 NASA의 우주인과도 어느 정도 비슷한 형색이지만, 완연히 다르다.

그가 무엇을 찾으려는지, 사방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탐사를 시작한다.

허공에다 손바닥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걷는 모양새가 마치 어느 무용수의 유명한 퍼포먼스처럼 느리고 또 유려하다.

뚜..... 뚜......뚜......뚜........

붉은 대기를 가르던 어떤 신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한다.

뚜뚜뚜뚜뚜뚜---------

그가 걸음을 멈췄다.

신호음이 정지한 바닥을 향해 그가 손바닥을 아래로 펼치자

둥글고 납작한 물체 하나가 붉은 흙을 뚫고 나와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른다.

물체가 그의 얼굴 가까이로 느리게 회전하며 다가온다.

구릿빛의 납작한 타원 가운데 새겨진 글귀 하나.

10원.

그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선 손바닥으로 광선을 뿜으며 그것을 스캔하자,

10원의 역사가 순식간에 역재생된다.

어둠.

진회색의 거대한 연기, 그리고 연이은 폭발들..

..이 아주 작은 점 하나로 모여들면, 하늘이 열린다. 붉다.

그러다 10원이 갑자기 솟아오르며 붉은 하늘을 뱅글뱅글 배회하다

1자로 난 어느 작은 통으로 들어가면, 저금통이다.

그렇게 10원은 한동안 저금통에 머무르다 다시 구멍 밖으로 나와서는,

어느 아이의 손에 들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누군가가 또 그걸 줍고,

그런 손들을 거쳐 과거의 은행, 시장, 도박판, 오락기, 시장에서 또 시장,

그렇게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또 다른 손들을 지나다니며...

조폐국, 광산, 그리고 다시 어둠.

화산, 원시의 바다, 그 안에 보여지는 생명들..

..이 세포 형태로 변해가다가 이윽고

바닷물이 끓어오르고, 원시 형태의 광물이었던 10원은 다시 바다 위로 떠올라...

자주빛 대기를 지나...거대한 구름 층을 뚫고선 우주를 향해 날아간다.

날아가고 날아가고 날아가다보면,

점점 자신과 비슷한 형태의 빛나는 것들이 모이고 모이더니 이윽고 하나의 별이 된다.

그 별이 돌고 돌며 우주를 여행하다가,

또 그런 비슷한 형태의 별들이 모이고 모여 또 하나의 별이 된다.

별이 되고 별이 되면서...

그렇게 더 큰 별이 되어가다가 종국에는

하나의 거대한 섬광,

그리고 다시 어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완전한,

어둠...

그가 스캔을 마쳤다.

동전은 다시 땅으로 서서히 돌아가는 중이다.

그 동전 위를 밟고 지나서는, 그가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

붉은 대지에는 새 모양의 발자국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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