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Long Hair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18년 5월 2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11월 12일

꿈에서 나는 파리에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짧은 영화를 보게 되었고, 나는 어떤 충격에 울면서 잠을 깼다.

그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한다.

Long hair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

마치 거대한 원통형의 세트처럼 천장은 높고 사방은 흰벽으로 막혀있다.

양쪽 벽에는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는 문들이 드문 드문 간격을 둔 채 가로로 나열되어 있고

바닥에는 무빙워크 하나만 길다랗게 놓여있다.

무빙워크가 시작되는 좌측 입구에서 들어오는

백인들, 황인들, 흑인들...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거나 또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그런 꼬락서니의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도 또 단정한 사람들과 남루한 사람들이 어지러이 뒤섞여

우측 끝의 소실점을 향해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흔히 신식 공항에서 자주 보는 풍경처럼, 사람들은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라면 무빙워크를 타고 가건, 걸어서 가건 그런 것쯤은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저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똑같이 희미하게 미소지은 채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뿐,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거나 시선을 마주하는 따위의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기계처럼 흘러가고만 있다. 심지어 누가 봐도 가족처럼 보여지는 일행들마저도 매한가지다. 기괴한 풍경이다.

무빙워크의 양쪽 벽에 빼곡이 나열된 작은 미닫이 문으로 이따금 몇 몇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만 제외한다면, 그곳의 풍경은 그저 끝이 없을 것 같은 반복의 연속이다. 문 위마다 정광판이 있다. 사람이 들어가면, 숫자가 늘어난다.

그런 낯선 풍경 사이로, 집시같은 어떤 여자 두 명이 특히 눈에 거슬린다.

구릿빛 피부에 온 몸이 퉁퉁 부은 30대 후반 여자가 빠르게 걸어가고 있고, 바로 그 뒤에 5살 정도로 보이는 깡마른 여자 아이가 짧은 두 다리로 중년 여자의 걸음을 쫓느라 정신이 없다.

지져분한 옷이며 검정이 잔뜩 묻은 꾀제제한 몰골도 몰골이지만, 특히나 그들의 헤어 스타일이 가관이다.

그들의 동일한 머리 모양새는, 흔히 우리가 산발이라 말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마치 창고에 버려진 크기 다른 두 그루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각각 붉게 빛이 바랜 채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다. 걸음에 밟힐 지경이다. 그런 형색임에도 역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곁눈질조차 주지 않는다.

아이가 중년의 여자를 힘겹게 따라가면서...

이따금 자신의 품에 안은 다 헤진 토끼 인형을 만지는 바람에 몇 차례 여자를 놓칠 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는 다시 힘차게 달려가 여자의 손을 꼭 붙잡는다. 하지만 여자는 아이의 손을 맞잡아주는 일이 결코 없다.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러자 어색해진 아이는 괜스레 입가에 미소를 띄어보이며 인형에게 뭐라뭐라 속삭이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 여자를 또 놓친다.

아이가 문득 고개 들어 여자를 찾는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산발의 여자는 아이의 먼 발치에서 벽을 바라보며 홀로 서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문 하나로 슥- 들어가버린다. 의아해하던 아이가 문 쪽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순간, 문이 세차게 닫혀버린다. 잠시 뒤 정광판의 숫자가 올라간다.

1001101001

아이가 멈춰선 채 지나가는 사람들만 멀뚱히 구경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왼쪽으로 되돌아가더니, 단정한 사람들 무리에 섞여 무빙워크에 올라탄다. 아이는 가만히 있어도 절로 가는 그 기계가 신기한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좋아한다. 무빙워크 위에 탄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게 미소짓고 있다. 모두 같은 모양새로 입꼬리가 올라간 채 표정이 굳어있다.

아이가 옆을 돌아본다.

무빙워크 바깥 쪽에서는 남루한 사람들이 앞만 보며 걷고 있다. 아이는 힘겹게 걷고 있는 그들을 향해, 자신이 무킹워크에 올라탄 사실을 자랑이라도 하듯,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어보인다. 하지만 그쪽 무리 역시 어느 누구도 아이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처음으로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가 깜짝 놀란다.


무빙 워크 바깥 쪽에서 아이와 비슷한 속도로 걸어가던 사내 하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것이다. 유일하게 아이와 마주쳤다. 그러더니 사내도 벽에 있는 문 하나로 들어가더니 이내 사라진다.

잠시간 아이는 멀어져가는 문만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 돌려 앞을 본다. 아이가 인형을 자신의 옆에 내려놓고선 손을 꼭 잡는다. 마치 조금 전 사라진 여자가 자신에게 그래주지 않았던 걸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사람들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이가 반대편 출구에 거의 도착했다. 출구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돌아선다. 인형을 안고선 거꾸로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의 발이 빨라진다. 그것이 점점 아이에겐 놀이가 된다.

꺄아— 아이가 함성을 지르며 역주행을 한다.

누군가와 부딪혀 아이의 손에서 인형을 떨어진다. 토끼 인형의 길다란 귀가 레일 사이에 낀 채로 아이로부터 멀어져간다. 아이가 다시 뒤로 돌아 힘껏 달려가 토끼를 꺼낸다. 아얏- 아이가 손가락을 바라본다. 아이가 인형의 찢어진 귀를 만져보며 울상을 짓는다. 인형을 쓰다듬어준다. 인형의 찢어진 귀에 피가 젖었다.

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출구로 사라졌다. 무빙워크도 멈췄다. 아이만 저 혼자서 멈춘 레일 위에서 뛰어 놀고 있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아이 뒤로 문들이 보인다. 그 중 전광판에 1001101001이라 쓰여진 닫힌 문의 사방으로, 그러니까 아까 아이의 엄마로 보였던 중년 여자가 들어갔던 바로 그 문 틈 사이로, 붉은 색 곱슬 머리카락들이 틈틈이 삐져나와있다. 바닥에서 약간 떠 있는 채로...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정관판 숫자가 리셋된다.

0

댓글


677e7103-550582.png
  • Instagram
  • Youtub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