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전
- YoungKon Joo
- 2016년 12월 7일
- 2분 분량
그곳에서 전,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이 운영하는 작은 노점을 찾아갔어요.
전 아무렇지않게 안부를 묻고선 노점상일을 도와주었죠.
조금 지나 나이가 어린 커플이 다가와서는 이런 저런 물건을 구경하더군요.
여느 10대 커플들이 그렇듯, 두 사람 모두 깡마른 체형에다 마치 빈 주머니를 숨기려는 것처럼 치장은 그만큼 화려했어요.
물건을 사지 않을 손님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음에도, 전 나름 친절하려 노력했죠.
노점의 판매대 위엔 까만색 표지에 진분홍 글씨가 새겨진 장부가 하나 올려져 있었는데,
커플의 사내 녀석이 물건은 사지 않고선 갑자기 "이거 한장만 가져갈게요."하더니 마치 샘플을 챙겨가듯 장부 한장을 죽 찢어서는 주머니에 챙겨가는 거예요.
전 당황했지만 옛연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괜찮다고 말한 바람에 그냥 내버려두었죠.
그러더니 갑자기 사내 녀석이 뒤에서 몰래 달려와서는 장부 전체를 가지고 달아나는 거예요.
전 사력을 다해 녀석을 끝까지 쫓아갔죠.
제 힘만으로는 잡기 힘들겠다 싶어 전 소리쳤어요.
"도둑이야! 도둑이야! 저 놈 잡아라!"
주변에 있던 몇몇의 청년들이 달려와 도와준 바람에 전 그 녀석을 잡을 수 있었어요.
녀석을 바닥에 내팽계쳐놓고선 장부를 빼앗은 뒤 전 녀석을 협박했습니다.
"널 절도죄로 고소할거야. 그러면 넌 전과자로 기록될 거고, 다시는 너로인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지."
녀석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여자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죠.
어린 커플은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저는 녀석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걸어가던 중 문득 무엇인가 궁금해졌어요.
'왜? 다른 것도 아닌 이런 장부 따위를.. 도대체 왜?'
전 녀석에게 물었죠.
"왜 훔친거야?"
녀석이 대답했어요.
"약속했거든요."
"뭘?"
"여자친구에게 주기로요. 얘가 예뻐서 갖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죄인처럼 무거워진 그의 걸음을 세우고서 전 녀석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어요.
"..너, 멋진 녀석이구나." 그리고선 옆에서 풀죽어 있던 녀석의 여자친구에게도 말했죠.
"널 얼마나 사랑하면 그랬겠니.. 너희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두 사람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어요.
전 그들을 놓아주며, 근처에 커다란 문구사가 하나 있으니 거기 가면 얼마든지 좋을 걸 살 수 있을 거라 설명해주었죠.
겁에 질려있던 어린 커플은 마치 우연히 사면을 받은 죄인처럼
"아! 정말요? 그걸 몰랐다니... 우리 거기 가보자."
라며 다소 과장스럽고 어색한 대화를 몇 마디 나누더니 함께 손잡고 거리를 향해 달려나갔어요.
멀어져가는 어린 커플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전 꿈에서 깨어났어요.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죠.
'돈은 있었을까? 돈이나 좀 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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