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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16년 11월 30일
  • 3분 분량

이제 나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내 이야기의 핵심에 이르고 있다. 바로 여기서 작가로서의 나의 절망이 시작된다. 모든 언어는 상징들로 이루어진 알파벳이고,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하나의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겁에 질린 내 기억이 간신히 간직하고 있는 그 무한한 알레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이와 비슷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신비주의자들은 많은 상징을 사용한다. 신성을 의미하기 위해 어느 페르시아 사람은 어쨌거나 모든 새들인 한 새에 관해 말한다. 알라누스 데 인술리스는 중심이 모든 곳에 있고 원주는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어떤 구체에 대해 말한다. 에제키엘은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동서남북을 동시에 바라보는 어느 천사에 대해 말한다.(내가 이런 믿기 힘든 유추를 떠올리는 것은 절대로 무용한 짓이 아니다. 이것들은 알레프와 어느 정도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신들은 내가 동등한 이미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테지만, 이런 이야기는 문학과 거짓으로 오염되어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중심 문제 -무한한 전체를 부분이나마 열거하는 것-는 해결될 수 없다. 나는 그 거대한 찰나에서 즐겁고도 끔찍한 수많은 행위들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서로 겹치거나 투명하지도 않게 동일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내 눈은 동시에 그런 것들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연속적 순서로 글로 옮길 것이다. 바로 언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이 닿는 한 뭔가를 포착해 볼 작정이다.

층계의 아래쪽 오른편에서 나는 거의 견디기 어려운 광채를 지닌 무지갯빛의 작은 구체 하나를 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그런 움직임이 그 구체 속에 담긴 현기증 날 정도의 광경들 때문에 생겨난 환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레프의 직경은 2~3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지만, 우주의 공간은 전혀 축소되지 않은 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각각의 사물(예를 들자면 거울의 유리 표면)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었다. 그것은 내가 우주의 모든 지점들에서 그 사물을 분명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붐비는 바다를 보았고, 여명과 석양을 보았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군중을 보았고, 검은색 피라미드의 한가운데에 있는 은색 거미줄을 보았고, 산산조각 난 미로(그것은 런던이었다.)를 보았고, 아주 가까이 있는 무한한 눈들이 마치 거울에 있는 것처럼 내 안에서 자신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지구상에 있는 모든 거울들을 보면서도 그 어떤 거울도 나를 비추지 있지 않는 것을 보았고, 솔레르 거리의 뒷마당에서 삼심 년 전 프라이 벤토스의 어느 집 현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타일을 보았으며, 포도송이들과 눈[snow]과 담배와 금속의 줄무늬와 수증기를 보았고, 적도의 볼록한 사막과 그곳에 있는 각각의 모래알을 보았으며, 인버네스에서 결코 잊지 못할 어느 여자를 보았고, 그녀의 심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도도한 육체를 보았으며, 그녀의 가슴에서 암을 보았고, 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던 오솔길에서 원 모양의 메마른 땅을 보았으며, 아드로게에 있는 별장을 보았고, 플리니우스의 최초 영어 번역본(필레몬 홀랜드가 번역한) 한 부를 보았으며, 각 페이지 안에 있는 각각의 글자를 동시에 보았고(어렸을 때 나는 닫힌 책 속의 글자들이 밤을 보내는 동안 서로 뒤섞이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밤과 낮을 동시에 보았으며, 벵골에 있는 어느 장미의 색깔을 반사하고 았는 것 같은 케레타로의 석양을 보았고, 아무도 없는 내 침실을 보았으며, 알크마르의 서재에서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놓인 지구본과 그 거울들이 지구본을 끝없이 증식시키는 것을 보았고, 새벽녘의 카스피 해의 해변에서 바람을 맞아 갈기가 뒤엉킨 말들을 보았으며, 어떤 손의 가냘픈 뼈마디들을 보았고, 우편엽서를 보내고 있는 한 전쟁의 생존자를 보았으며, 미르자푸르의 어느 진열장에서 스페인 트럼프 한 벌을 보았고, 어떤 온실 바닥에서 양치류 식물들의 비스듬히 기운 그림자를 보았으며, 호랑이와 금관 악기와 들소와 거대한 파도와 군대를 보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미들을 보았으며, 페르시아의 천체 관측기를 보았고, 한 책상 서랍에서 베아트리스가 카를로스 아르헨티노에게 보낸 음탕하고 믿을 수 없으며 상세하게 쓴 편지(그 글씨를 보자 나는 떨지 않을 수 없었다.)를 보았으며, 차카리타 공동묘지에 세워진 사랑스러운 기념비를 보았고, 한때는 달콤하게도 베아트리스 비테르보의 것이었던 끔찍한 유해를 보았으며, 내 어두운 피가 순환하는 것을 보았고, 사랑의 톱니바퀴와 죽음으로 인한 변화 과정을 보았으며, 모든 지점에서 알레프를 보았고, 알레프 안에서 지구와 또다시 지구 안에 있는 알레프와 알레프 안에 있는 지구를 보았으며,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고, 네 얼굴을 보았으며, 현기증을 느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대상은 사람들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만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 그러니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였다.

(중략)

거리에서, 콘스티투시온 광장의 층계에서, 지하철에서, 나는 모든 얼굴들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이제는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내가 이미 보았던 것에서 다시는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밤의 불면 끝에 다시 망각이 내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 보르헤스의 '알레프'중에서.

Muchas gracias. 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송병선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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