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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나의 별이었다.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16년 8월 15일
  • 3분 분량

해가 지는 나라에 사는 어느 할아버지는 오늘도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며 알아듣지 못할만큼 작은 목소리로 자신이 가진 단어들을 조합해보며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천체 관측은 그가 젊은 날 자식 하나 남겨주지 않은 아내를 병으로 잃고나서부터 생긴 취미였다. 그것은 또한 그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과도 같은 행위였는데, 아내의 12주년 기일이 되는 날 그의 망원경 속으로 우연히 작게 빛나는 별 하나가 들어온 뒤부터는 그것이 마치 아내가 먼곳에서 이따금 전해주는 안부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루하루 밤하늘에 자신의 고독을 그려보며 12년마다 찾아오는 그 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내의 새로운 편지가 도착하는 4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별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으며 그가 사는 오두막 맞은 편의 산허리를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그 별의 이름을 짓지 못해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열거하고 또 조합해보며 망원경을 잡고 있는 손의 반대편에 놓인 낡은 일기장에 대고 별을 둥글게 그려보고 있었다. 그가 매일동안 반나절씩 읽어왔던 온갖 사전 속의 단어들은 켜켜이 쌓인 그의 수백권의 일기장 속에서 느리게 또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머리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단어들을 대체할 단 하나의 이름이 필요한 시기가 드디어 그의 인생에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낡은 더블 침대에 몸을 뉘운 그의 꿈 속에서, 그 별은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그에게 비밀스럽게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그 단어를 알지 못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였기에, 행여 그것이 닳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다음날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밤하늘을 향해 마음으로 소리내어 그 발음을 조심스레 연습해보곤 했다. 그 별을 향해 처음으로 소리내어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는, 할아버지는 또 다시 기나긴 12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해가 뜨는 나라에 사는 어느 할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선 평소에 친했던 약국에 들러 올해는 흙이 안좋은지 키우는 화초들에 열매가 안 난다며 투정을 부리더니 제초제를 한 병 구입했다. 사실은 물을 줘야할 시기를 자꾸 잊어버려서였다. 그리고선 동네의 단골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곱게 정리한 뒤 시장에 들러 평소 좋아했던 국수도 실컷 먹고선 그간 지나다니며 몇 번이나 망설였던 조금씩 썩은 채로 바구니에 담긴 떨이 포도도 왠일로 가격도 흥정하지 않고선 두송이나 한 봉다리에 가득 담았다. 포도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그리고나서 모처럼 주인댁에 들러 밀린 월세의 고작 한달치를 정리해보며 딸뻘 되는 안주인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대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6.25 전쟁이 데려갔고 어렵게 키워 도시로 보낸 아들은 소식이 끊어진지 14210일하고도 하루가 더 보태지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그녀의 머리속에서의 그 14210일은 여섯달하고도 일주일이나 더 맴도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그녀가 사는 반지하 방으로 돌아와 포도를 여섯번이나 씻고나서는 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그냥 안 씻고 먹어도 되겠다며 혼잣말을 하고선 한알 한알 천천히 씹어삼켰다. 세 알 정도는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 늦은 9시가 되자 그 좋아하는 티비도 켜지 않고선 할머니는 한참동안 우두커니 거울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거울 옆에 놓인 약봉다리 하나를 발견했다. 작은 병에 든 녹색의 물약이었다. 그녀는 안경을 찾아 효능을 세심히 읽어본뒤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어보더니 기어이 물약을 마셨다. 그리고선 남겨둔 포도 세 알을 한꺼번에 입에 넣어 맛있게 오물오물 씹어삼키고나서는 그제야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날의 이부자리는 할머니의 땀으로 흥건히 젖어갈때까지 뒤엉키며 몹시도 고통스러워했다.

12년 뒤의 같은 날, 해가 지는 나라에서는 어느 할아버지가 12세기와도 같았던 기나긴 나날동안 손꼽아 기다려온 단 하나의 작은 별을, 끔찍히도 길었던 그 밤들을 수천번을 넘겼음에도 전체망원경 안에서 끝끝내 관찰하지 못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눕고선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이 견뎌왔던, 젊은 날 고위직의 은행원이었던 그가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이나 많이 견뎌왔던 그 별의 이름을 그제야 허공에다 조용히 한번 내뱉어보며 겨우 잠이 들었다. 그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그 별의 의미가 무슨 뜻이었는지를 알 지 못했지만, 사실 그것은 해가 뜨는 나라에서 하나의 고독한 인생으로 이 별에 잠시 머물렀던 어느 할머니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날, 나에 의해 발견되었던 또 하나의 별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발견될 나의 작은 별 또한 그 빛을 점차 잃어가고 있음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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