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후회'야.
- YoungKon Joo
- 2016년 7월 25일
- 2분 분량
둥글게 생긴 방 안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한 사람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끝없이 웃기만 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얼굴을 부여잡은 채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그러자 울음소리에 화가 난 계산기를 든 사람이 소리쳤다.
"시끄러워! 너 때문에 계산이 자꾸 틀리잖아! 구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이십구." "미안해. 하지만 도무지 울음이 그치질 않아. 흑흑흑흑." "대체 너 누구야? 누구길래 그렇게 바보처럼 울고만 있는거지? 구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이십구." "내 이름은 '후회'야."
"근데 왜 울어?"
"어젯밤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났거든. 흑흑흑흑." "천사? 근데 왜 울고 있는거지?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 "천사가 나를 곧 저세상으로 데려갈 거래. 흑흑흑흑." "천국이라도 데려가겠다던? 그건 좋은 일이잖아.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 "맞아. 그래서 울고 있는 중이야. 흑흑흑흑." "이해가 잘 안되는데? 그게 왜 울 일이라는 거지?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일." "그곳에는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가 없대. 그런데 하루종일 생각해봐도 내게는 한가지 기억 밖에 없거든. 흑흑흑흑." "그것 참 안타까운 일이군.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일." "넌 누구니? 누구길래 그렇게 하루종일 계산만 하고 있니? 흑흑흑흑." "내 이름은 '탐욕'이지. 난 지금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는 내 재산을 관리하는 중이야. 이건 너무나 신나는 일이거든. 그러니 이젠 좀 조용하라구. 난 계산을 해야돼.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일,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이,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삼.."
'탐욕'은 해가 지고 늦은 밤이 될 때까지 계산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문득, 그는 한가지가 궁금해져서 계산을 잠시 멈추고선 옆을 돌아보며 '후회'에게 물었다.
"잠깐, 그래서 네가 가지고 갈 한가지 기억이라는 게 뭐지?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삼...?""
그러나 '탐욕' 옆에 있던 '후회'는 온데간데 없고,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 한 명 앉아있는 것이었다.
"뭐야? 넌 대체 누구야? 아까있던 '후회'는 어디갔지?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삼." "난 천사야. 너는 참 바빠보이는구나." "네가 바로 '후회'가 말한 그 녀석이로군. 그나저나 '후회'는 어디 갔지? 마침 뭔가가 몹시 궁금해져서 그 녀석에게 한가지를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사." "아..그 사람은 벌써 저세상으로 갔어. 그런데 이상하네."
"뭐가?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사."
"그 사람 이름이 '후회'였다고?" "그래. 내게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 자신의 이름이 '후회'라고 말이야.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사." "설마? 그 사람은 분명히 내게 자신의 이름을 '탐욕'이라고 밝혔는데." "그럴리가? '탐욕'은 바로 내 이름이라고.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 혹시 한가지만 물어봐도 돼?" "쉿~ 조용해. 난 계산을 해야돼. 그 사이에 재산이 더 많이 불어났단 말이야.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육.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칠. 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팔..천사백삼십사만오천칠백삼십구...."
새벽을 맞이하기 시작한,
둥글게 생긴 방 안은 다시 '탐욕'의 계산 소리만 가득해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뭔가 이상해진 그는 계산을 멈추고선 다시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순간 머릿속의 모든 기억들이 사라지면서 한 가지 기억만 남았다.
이윽고 새아침이 밝아오자,
그는 그제야 계산을 멈추고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울음은, 그가 있던 둥근 방 안에 계산기를 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결코 멈추질 않았고,
심지어 그가 마침내 연기처럼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는 말했다.
내 이름은 '후회'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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