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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전

  • 작성자 사진: YoungKon Joo
    YoungKon Joo
  • 2016년 2월 15일
  • 3분 분량

그곳에서 전 오래된 빠리의 어떤 거리를 걷고 있었어요.

이끼가 군데군데 껴있는 그곳의 낡고 예쁜 건물들.

그리 불쾌하지 않은 지린내 사이로 피어나는 향긋한 향수 내음들.

저는 그 건물들 사이로 좁다랗게 나있는 골목들을 아이처럼 신나게 뛰어다녔어요.

광대처럼 분장한 백인 총각 처녀들.

웃도리를 벗은 채 하얀 멜빵이 달린 항아리 바지를 입은 깡마른 근육질의 남자들, 거리의 예술가들이었어요.

정리되지않은 부시시한 노란색 빨간색 갈색의 긴 머리를 빗으며 나를 향해 미소짓던 통통하고 어여쁜 여자들, 거리의 여자들이었어요.

제가 그 거리를 지나가니까 그들이 자꾸만 저를 잡으려 들어요.

그래서 전 웃으며 도망다녔죠.

"쥬씌데죨레~ 쥬씌데졸레~"

한참을 신나게 혼자 돌아다니다 파리에 사는 키작은 털보 친구를 만났어요.

얇은 종이에 말린 녹색의 좁쌀같은 바짝 마른 식물들,

친구가 준 그 담배를 개울가에 놓인 작은 돌 위에서 한 모금 피고는 마구마구 웃으며 아이처럼 뛰어다녔어요.

파란 눈을 가진 누추한 동네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깎아만든 총을 겨누며 제게 전쟁놀이를 걸어왔어요.

저는 읔! 앜! 하며 총에 맞은 척 함께 놀아줬어요.

아이들이 웃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했어요.

"봉쥬흐~ 봉쥬흐~"

친구와 함께 거리를 구경다녔어요.

어쩌다 보게 된 어느 외곽의 조용한 동산.

"어? 저기 하늘에 맞닿은 하얀 언덕이 있구나. 친구야 저기 가보자!"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귀엽고 아름다운 얼음성과 광대 조각들.

그것들이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저는 깜짝 놀랬어요. 거리의 마이미스트들이었어요.

그리고 하얀 성은 그들이 사는 초라한 집을 예쁘게 꾸민 거였죠.

전 돈을 나눠주고 싶었지만, 주머니엔 동전만 딸랑거려서...

"브헤멍데죨레. 브헤멍데죨레."

시무룩하게 돌아서다 표정을 바꿔 웃고선 그들에게 다시 다가갔어요.

"멕시보쿠~ 멕시보쿠~"

"듀헤앙~" "듀헤앙~"

그들이 활짝 웃어주었어요.

여기 저기 다른 골목들.

짙은 상아색의 예쁜 건물들 사이를 달리고 달렸어요.

"저 녀석 잡아라~"

장난스레 절 쫓아오며 호객 행위하는 쭈글쭈글 피부가 까만 상인 아저씨들.

"무슈~ 오흐부와~"

어느 골동품 가게 앞에 걸음을 멈췄어요.

예쁘고 귀한 물건들을 구경하며 저는 거기 서 있었어요.

에밀 아자르의 소설에 나오는 모모처럼, 창 밖에 서서 웃으며 한참을 구경했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죠.

뭐가 있었더라. 뭐가 있었더라. 기억이 안나요.

친구는 어느새 떠나가고 없었고

전 어느 거리의 여행자 숙소를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곳에 묵고 있던 누군가가 절 불렀어요.

"감독님 감독님. 어디 가요? 여기서 지내요~"

"와 반가워. 너 여기 있었구나. 정말 고마워."

조감독이었던 동생이었어요.

싸구려 여행자숙소의 단체방같은 분위기.

낡고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이층침대들,

간간히 벗겨진 하얀 페인트,

원래 하얀 색이었을 벽들은 모두 노란색.

동생은 그곳에서 지내는 모든 외국 친구들과 잘 지내보였어요.

그가 인사시켜준 금발의 남루한 백인 아가씨.

서로의 팔을 손등으로 어루만지며 인사를 나눴어요.

피부는 거칠고 조금 갈라져있었지만 아가씨는 전혀 상관이 없는듯 웃었어요.

주황색 머리색을 가진 백인 아가씨를 한명 더 인사시켜주며 동생이 말했어요.

"이 친구들이 오늘 다른 방을 잡아서 놀거라며 같이 놀재요."

"아~정말? 하지만 난 돈이 없는 걸."

"괜찮아요. 얘네들이 낸대요."

"그럼 좋아~"

조감독 동생 역시 그곳의 가난한 배낭 여행자.

아주 낡은 숙소 건물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파티를 즐기는 그런 곳인가봐요.

금발 여자애가 돈을 지불하려 준비하더니 절 보며 물었어요.

"넌 뭘 해줄거야?"

주머니 속 동전을 만져보다 짤랑거리는 소리를 얼른 숨겼어요.

미안해하다가 용기내서는 다시 웃으며 다가갔어요.

이탈리아 아빠와 한국 엄마에게서 태어난 빠리 사는 동생이 알려준 정중한 인사말.

목소릴 낮게 깔고 말했어요.

"밀익스큐제 브헤멍데죨레. 마듀모아젤~"

그녀가 하하하하 웃었어요.

옆에서 줄 서있던 사람들도 저를 보며 웃었어요.

어떤 신사가 제 눈을 마주치며 더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말해줬어요.

그래서 전 더 신경써서 다시 말해보았어요.

그가 고갤 끄덕이며 미소지었어요.

사람들도 좋아했어요.

다른 곳을 혼자 돌아다니다 다시 아까 그 숙소를 찾아갔어요.

조금 전 금발 아가씨가 왠 갈색 머리의 히피 남자와 이층 침대에 함께 누워서는 서로의 팔을 문지르며 얘길 나누고 있었어요.

'에이, 여자애가 좀 헤픈가보다. 괜한 기대를 했지 뭐야.'

자릴 비켜주려는 순간 그녀가 절 보더니 손 흔들어 반겨주며 침대 아래로 내려왔어요.

히피같던 남자도 함께 내려왔죠.

금발의 아가씨가 "지금 놀러 갈까?"라고 물어보기에 전 망설였어요.

'그럼 이 남자애는 어떡해?'

파란 눈의 아가씨가 갑자기 그를 신경도 안 쓰는 거예요. '남자애 왠지 불쌍해'

여자앨 힐끔 보며 마음 속으로 말했어요. '못됐어.'

대답없이 가만히 서 있는 절 보더니 그녀가 제 가방을 보며 물었어요.

"이건 뭐야? 열어봐도 되니?"

"응. 그럼."

두꺼운 캔버스천으로 만들어진 곤색의 제법 큰 어깨걸이 만두가방, 어깨끈과 가방 테두리는 완연한 초록색.

가방을 열어보니 알록달록 온갖 종류의 장난감들이 가득했어요.

맨 위에 올려진, 포장을 뜯지 않은 처음 보는 예쁜 새 장난감.

'누가 넣었지? 친구가 훔쳐서 선물준건가?' 전 생각했어요.

마치 긴 막대기를 위 아래로 흔들면 양 끝에 달린 둥근 나무들이 부딪히며 소릴 내던 그 장난감, 딱딱이였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빨간 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알록달록 그림까지 예쁘게 새겨진, 나무로 조각된 너댓개의 피라미드 모양의, 세모꼴이 하나의 줄로 연결된 아름다운 장난감.

"와~이거 정말 오랜만이다!"

옆에 서 있던 히피 친구가 그 장난감을 보며 소리쳤어요.

그 바람에 방안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저를 향해 돌아봤어요.

"와~ 나도 옛날에 저거 가지고 놀았는데~ 나 한번 해봐도 돼?"

"그럼! 얼마든지~"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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