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전
- YoungKon Joo
- 2013년 11월 21일
- 4분 분량
그곳에서 전
99,000원의 검은 색 레자가 씌워진 1인용 쇼파를 구매하고선 그것이 대단히 멋지거나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음에도 제 코란도 뒷칸에 항상 실어두고 다니길 좋아했어요.
어느 늦은 밤, 공원에 차를 세워두고 쇼파를 꺼내 그 위에 앉았어요. 공원 주차장 양쪽에는 승용차라고는 온데간데 없고 녹슨 대형 트럭들만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어요. 언젠가 늦은 시간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본 풍경과도 비슷했죠. 제겐 즐겁기만한, 운전이란 행위로 생계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고단한 운전자들의 밤을 껴안아주기라도 하듯,
차분한 밤안개가 고요하게 공원을 감싸주고 있었어요. 잠시 쉬어가기엔 그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전 생각했어요.
작게 공원을 울려퍼지는 코 고는 소리와 또 그들의 숨소리는 즐거웠지만 주변의 공기만큼은 차고 어둡고 또 슬펐어요.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전화는 아니었지만 어떠한 신호로 제 차를 빼달라는 소식을 듣고선 차를 빼주러 가게 되었는데,
금방 돌아올 생각이었으므로 쇼파는 그 자리에 놓아두고 가게 되었어요. 다시 돌아오는 길에, 저 만치에서 두꺼운 털모자를 눌러 쓴 거구의 남자가 제 쇼파를 만지고 있는 게 보였어요.
전 걸음을 재촉했죠.
버리는 물건인 줄 알고 가져가려는 모양이다 생각하는 찰나,
그가 쇼파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무릎에 찍어 두동강을 내버리는 것이었어요. 전 그에게 따지러 달려가면서도 그 덩치에 약간 겁을 먹기도 했어요.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가 조금 놀란 기색으로 고갤 돌려 저를 내려다보았어요. 하얀 피부를 가진 그의 나이는 제 또래쯤 되어보였고, 키는 비현실적인만큼 컸지만-제 키의 한배반 정도나 컸음에도- 저보다도 마른 부실한 체구였어요. 제 걱정과는 반대로 그의 눈빛은 촉촉히 빛나는 것이, 제법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이건 제 쇼파인데 뭐하시는 거예요?" 그는 몰랐다는 듯 우물쭈물하며 말을 먹고 있었어요. 쇼파와 제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다 부서진 이 쇼파를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금새 울어버릴 것처럼 글썽이고 있었어요. "변상하세요." 그의 우물쭈물한 태도에 저를 찾았던 조금 전의 그 두려움은 이미 달아나고 없었죠.
5만원 쯤 받으면 되겠거니 하다가도 저의 간사한 마음이 10만원을 요구하고 있었고, 충분히 그 정도로는 보였을거라 전 생각했어요. 그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겠노라 대답했죠. 그는 아이가 엄마 앞에서 이미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보려는 것처럼 한참동안 주머니를 몇 번이고 뒤적거렸어요.
돈이 없는 게 분명했죠. "연락처를 주세요." 그가 자신의 연락처를 고민하며 한 글자씩 불러주자, 전 거짓 번호임을 눈치채고선 언성을 더 높혔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바로 확인해 볼 거예요." 그제서야 그가 자신의 큰 트럭에서 핸드폰을 가져와 제 번호로 전화를 걸었어요. 저는 제 핸드폰에 뜬 그의 번호를 저장하고는, 그를 더 겁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무지함을 이용해 확실하게 변상을 -아니, 푼돈이지만 정확히 1000원을 더- 받아낼 참이었다. "내일 십만원을 입금하세요. 지금부터 당신을 동영상으로 찍어놓을 거예요.
만약 내일 입금이 안 되어있으면 난 당신을 바로 고발할 겁니다.
이 동영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할 수도 없을 테니 명심하세요." 그가 시선을 떨군 채 힘없이 고갤 끄덕였어요.
그는 분명 가난한 노동자였고, 아무 죄도 없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는 10만원이란 금액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해보였죠. 사실 그는 죄가 없었어요. 당연히 누군가의 집 거실에 있어야할 쇼파를 두고 볼 때, 길 위에 놓였다는 것은 단지 저만이 그것이 제 재산임을 인정할 뿐이지, 쇼파 위에 떡하니 '내 물건'이라고 써붙여놓지 않는 한, 어느 누가 저의 중요한 재산임을 알 수 있었을까요? 아니. 오히려 그는 자신의 번거로움을 희생해, 길 위에 버려진 커다란 쓰레기를 치움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하려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죠. 그가 저보다 법을 잘 알아서 오히려 저에게 왜 저런 걸 길위에 놔두었다고 따졌다면 전 분명 할 말이 없었을 테죠.
만약 스포츠 경기처럼 진로방해죄라는 것이 실제로도 있다면 오히려 제가 길을 막은 문제로 죄인이 될 수도 있을 노릇이었으니까요.. 그런 생각이 들자, 전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덮으려 더 불합리적이고 못된 마음으로 그를 윽박질러서 내일 반드시 변상액을 입금해줄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어요.
우린 같이 담배를 피웠거나, 어떤 행위로 인해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기 시작했는데-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쯤엔 제 마음이 조금 누그러뜨러져 있었어요. 뭔가를 중얼중얼 말하고 있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니, 피부가 하얀 것이 제법 잘생긴 얼굴이었고, 몸매 역시 잘 빠져서 만약 말끔히 차려입으면 제법 태가 살만한 훌륭한 체형이었죠. 물론 이것은 저의 추측일 뿐이지, 어느 누가 봐도 초라한 넝마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그였어요.
그의 몸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도 분명히 그랬죠.
그가 다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동정을 호소하거나 변상액을 깎아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보였죠.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어떤 의도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말들이었어요.
단어 선택과 어순들은 전혀 맞지도 않았으며, 개연성도 없고 재미도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었어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말을 할때나 가능한 그런 말투랄까요.
어느 누구나 말을 할때는, 적어도 어순은 맞춰야 하기에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기 마련인데
그가 말을 할 때에는 정말이지 아예 머리를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순수했죠. 저와는 완전히 반대로... 그 와중에도 그가 낄낄거리며 말했어요.
"내가 사는 곳은 그러니까 말이죠, 여러 사람들이 화장실을 함께 막 쓰고 막 그런 곳인데요.
거기 사는 사람들은 전부 나같은 그런...뭐 남자들인데,
거기서 막 씻고 있으면 밖에서 누가 똑똑 노크를 해요.
그러면 밖에서 씻으려고 기다리는 그런 남자들이거나 몸을 파는 아줌마요,
그런 여자들인데, 우린 그 여자를 노크똑똑이라고 불러요. 낄낄낄낄.
얼굴이랑 몸매는 엉망이고요, 진짜로요. 한번 하는데 이만원이에요. 나도 이만원 주고 해본 적은 있거든요.
그때 애인도 있었어요. 그 여자보다 예뻐요. 그러니까 제 애인이요. 제 애인은 예뻤다는 말이에요. 그 여자보다도요.
그러면 그냥 화장실에서 씻다 말고 하는 거예요. 낄낄낄낄."
그가 그 이야기를 하는동안
마치 영화의 플래쉬백처럼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남자의 장면이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졌어요. 그가 씻고 있던 길고 좁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한쪽 어깨를 벽에 기댄 채 반대 팔을 뻗으면 팔꿈치가 다 펴지지 않을만큼 좁은 공간이었는데, 세로폭은 성인남자 걸음으로 다섯걸음 정도 되는 길이였죠.
그의 긴 다리로는 세 걸음 정도 디딜 수 있는 길이였으니, 그의 키에 비해서는 무척이나 좁은 편이었죠.
누렇게 때가 탄 변기와 크고 녹슨 수도꼭지 하나가 고작인 허름한 화장실의 바닥은 온통 연회색 시멘트였고
우측벽과 뒷벽은 누런 색인데 반해 왼쪽벽만 특이했는데, 마치 뭔가 견딜 수 없을만큼의 더러운 것이 있어 그것을 최근에 칠로 덮어버린 듯이 코랄색으로 깨끗하게 칠해져 있었어요. 키가 큰 그 남자는 코랄색 벽 반대편 구석에 구부정하게 기대 몸을 씻고 있었어요.
전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가난한 노동자의 무지를 이용해 돈 벌 생각을 한 제 자신이, 순간 너무나 초라해졌어요. 그러면서도 전 "내일 그냥, 칠만원만 줘요."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가 고마워했죠.
바보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전 꿈에서 깨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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