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YoungKon Joo
- 2015년 10월 23일
- 13분 분량
언젠가 꾸었던 꿈을 이곳에다 기록한다.
터널
소년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선 고개 돌려 작은 마을을 한 번 더 내려다 보았다.
'아니야. 가야 돼. 그래. 가야 돼.'
소년은 시선을 몸의 방향으로 힘겹게 바로 돌린 뒤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땅인 [지금 여기]를 다시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더이상 머물러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동안 [지금 여기]에 머무른걸까?'
소년은 물가로 가서 몸을 씻고선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바닥으로 물 위를 세차게 내리치며 자신의 형상을 흐트려버렸다.
몸이 깨끗해진 소년은 물병에 물을 담은 뒤 한동안 물속에 더 머물러 있었다.
물병의 뚜껑을 닫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년은 굳게 닫힌 문 앞에 다시 섰다.
두려웠기에, 다신 찾지 않을거라 맹세했던 어떤 입구¹. 하지만 반대편에 무엇이 있을지 언제나 궁금했던, 바로 그 터널의 입구였다.
문 앞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긴 실자락들과 실패(牌)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것은 터널을 들어간 사람들이 돌아나올 때를 위해 마련해둔 일종의 안전 장치였다.
반대편으로의 도달을 몇 번이나 시도했던 소년 역시 그 실 덕분에 매번 안전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참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어딘가 어리석다는 느낌 또한 버릴 수가 없었다.
소년이 힘을 주어 문을 밀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 큰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소년은 마지막 도전 때보다 더 큰 실패를 꺼내어 실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실의 한쪽 끝을 터널 입구 옆 아름드리 나무에 묶어놓고선 실패를 허리춤에 찼다.
소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뒤, 터널 안으로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점점 어둠을 향해 다가갈수록 입구에서 바닥을 쓸며 들어오는 불빛 또한 점차 사라져갔다.
소년은 얼마쯤 들어가서야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어둠 속의 작은 점만이, 마치 소년에게 돌아오라는 듯 희미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보자, 결국엔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고 소년은 다시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아냐. 이건 몸이 추워서 그런거야.'
생각이 많아지자, 소년은 그저 벽을 짚은 채 걷는데에만 온정신을 집중했다.
다리가 아파오거나 허기질 때마다 온갖 상념들이 그를 괴롭혔고, 그럴때면 잊기 위해 소년은 더 빨리 걸었다.
드디어 걱정마저 어둠속에 숨어들자, 소년은 갑자기 목뒤부터 엉치뼈까지 척추가 온통 얼어붙는듯한 한기를 느꼈다.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는 그저 걷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품이 그리워졌고, 터널 속의 냉기와 함께 짙은 외로움이 소년을 엄습했다.
'맞아. 내가 게을러서 추운거야.'
소년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안고선 앞을 향해 조금씩 속도를 높히기 시작했다.
숨이 차오를만큼 열심히 뛰던 소년이 갑자기 뭔가에 걸려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 순간 뾰족한 무언가에 다리를 찔린 것 같았지만, 너무 어두웠기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상처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소년은 용기내어 다리를 어루만져보았다. 정강이에서 뭔가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자, 소년은 허벅지를 실로 동여맨 뒤 상처를 꿰매어 보려 했지만, 살을 찢는듯한 고통에 이내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소년은 어금니를 세게 문 채로 땅에 손을 짚고 겨우 일어섰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고꾸라졌다. 소년은 도무지 일어설 자신이 없었다.
'돌아가서 나으면 다시 올까? 하지만 이 다리로 어떻게 돌아가지?'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이미 소년의 몸은 차갑게 식어가며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국 어떻게든 돌아가야겠다 결심한 소년이 힘겹게 팔을 뻗자 딱딱하고 긴 막대기가 손에 잡혔다. 그를 다치게 한 제법 굵은 부러진 나무가지였다. 소년은 땅에 박힌 막대기를 힘껏 뽑아 땅에 집고선 겨우 일어섰다. 그리고선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막대기를 몇 번 정도 땅에 세게 내리쳐보았지만, 막대기는 쉼게 부러지지 않았다. 사실 소년에겐 그만큼의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소년은 제법 튼튼한 게 지팡이로 쓰면 좋겠다며 막대기를 칭찬했다.
'나를 괴롭혔으니 이젠 네가 날 도와줄 때야.'
막대기 하나 때문에 소년은 왠지 동료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소년은 한참을 더 걸었다.
입술이 말라가던 소년이 허리춤에 찬 물병을 꺼내 물을 한 모금 마신 순간, 그제야 다리에 뭔가가 들러붙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년은 소릴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 바람에 물병 안에 있던 물이 바닥에 다 엎질러졌다.
소년은 손으로 다리를 조심스레 더듬어보았다. 뭔가 물컹거리는 것들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아냐. 내가 지쳐서 착각하고 있는 거야. 일어서야 돼.'
소년이 마음을 다시 고쳐먹어도 여전히 다리 위의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자, 소년은 그것을 내버려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가 썩어가는 걸까? 만약 가야할 길이 걸어온 길보다 멀다면...그때는 어떡하지?'
소년은 다쳤을 때 돌아갈 걸 괜히 이만큼 더 왔다며 후회했다.
틈틈이 아껴먹었던 감자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게다가 물도 없었다.
머리속의 모든 것이 절망으로 치닫던 그 순간, 어둠 속 반대편에서 작은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혹시 거기 누구 있나요?"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소년은 반가움에 얼른 소리쳤다.
"네!"
"아! 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끝이 나오나요?"
"난 여기보다 훨씬 더 들어가봤어요. 하지만 끝은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돌아가는 길이에요."
소년은 실망감에 몸이 더 차가워짐을 느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떤 온기가 다가옴을 느꼈다.
길이 어두워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소녀의 말투나 목소리로 봐서는 자신의 또래 정도일 거라 소년은 짐작했다.
소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녀가 말했다.
"다쳤구나..."
"어떻게 알았어?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
소년이 대답하자, 소녀가 이어 말했다.
"네 걸음 소리를 듣고 알았어. 나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거든."
소녀의 뻗은 손이 상처에 닿자 소년이 비명을 질렀다.
"아악."
"심하게 다쳤는 걸? 하지만 다행이야."
"다행?"
"구더기들이 붙어있어."
"구더기라니, 상처가 썩어가는 거야?"
"아니, 오히려 반대야. 구더기들이 상처의 썩은 부위를 먹고 있거든. 그래서 다행인거야."
소년은 소녀의 말을 의심했다. 소년에게 있어 구더기는 분명 더럽고 불결한 벌레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조금 쉬다가 나랑 같이 돌아가자. 더 무리했다간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라."
소녀가 먼저 바닥에 드러눕자, 소년도 모처럼 바닥에 몸을 뉘었다.
둘은 나란히 누운 채 오랫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녀 역시 [지금 여기]에는 더이상의 새로움이 없다고 느껴져서 결국 터널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소녀가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소년은 그녀를 안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생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소년은 마음을 고쳐 먹었다. 하지만 오랜 여정 끝에 소녀가 내린 결론은 '터널의 반대편 또한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다.'였다.
언제부턴가 소년의 대답이 없다고 느낀 소녀가 벽에 머리를 기댄 소년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녀는 초췌한 그의 머리를 자신의 야윈 팔로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그 순간 소년은 꿈속에서 소녀와 함께 [지금 여기]로 돌아가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소년이 꿈 속에서 물가에 발을 담그고 사랑을 속삭일때쯤, 그는 소녀의 목소리에 잠을 깼다.
"일어나. 이제 돌아가야할 시간이야."
소년은 모처럼 편안하게 잘 잤다고 생각했다.
소녀가 짐을 챙기고 있을 무렵, 소년은 허리에 매달린 실패를 확인해보았다. 아직도 제법 많은 실이 남아있었다. 머뭇거리며 앉아 있는 소년을 보며 소녀가 말했다.
"어서 준비해."
"미안해. 난 돌아가지 않을래."
"왜? 마음이 돌아섰니?"
"난 돌아간다고 말한 적 없었어. 난 아무래도 더 가봐야겠어."
"왜 바보짓을 하려는거야? 난 너보다 더 먼 곳까지 다녀왔어. 게다가 넌 다리까지 다쳤는걸.."
"왠지 가야한다는 느낌이 들어."
"후회 안 할 자신 있니?"
소년은 실패를 만지기만 할 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소년에겐 여정을 이어갈 그 어떤 정당한 이유도 없어 보였다. 소녀가 말했다.
"그게 남은 실이구나. 그만큼 가봐도 끝은 없어. 날 믿어."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의심하는건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자신을 더 믿었기에, 그는 곧장 실을 끊어버렸다. 갈등이 사라지자 소년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소녀는 자신이 가진 여유분의 음식과 물을 소년에게 나눠주고선 말없이 [지금 여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글썽이며 소년을 향해 혼잣말로 바보라며 욕했다. 그렇게 소녀는 소년의 등 뒤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소년은 다시 반대편을 향해 한참동안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그는 끊임없이 어둠속을 더 걷기만 했다.
'얼마나 더 가야할까? 그 앤 아마 [지금 여기]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겠지?'
소년은 문득 소녀가 그리워졌지만, 뒤돌아보진 않았다.
꿈에 소녀가 나오는 바람에 더 열심히 걸었던 날도 있었다.
어떤 날엔 실패를 버린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 행동이 소녀에게 멋있어 보일거라 생각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마지막에 확인했던 실의 양보다 훨씬 더 많이 온 것 같았지만, 터널은 여전히 바늘끝만한 빛조차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다리에 난 상처에는 이미 딱지가 앉았고, 더이상 먹을 것이 없어진 구더기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벌써 떠나고 없었다. 소녀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소년은 잠시 앉아 쉬며 그녀가 전해준 마지막 음식을 바라보았다. 왠지 다 먹기가 싫어서, 소년은 세심하게 아끼고 또 아껴 먹었다. 그래봐야 손가락만한 감자 한 조각과 물 반모금이었음에도, 소년은 조금 남겨두었다.
소년이 잘 먹었다며 기분 좋게 배를 두들기자, 어쩐지 먹기 전보다 배가 더 고파지는 기분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간다면 혹시 그 애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난 이제 되돌아가는 길도 모르는 걸.'
소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생각을 지워버리려 애썼지만, 선뜻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앉은 채로 잠시 더 쉬기로 마음먹었다. 가야할 타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유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소녀의 얼굴과 목소리가 강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잊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자꾸만 소년의 가슴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울컥하며 솟구쳐 올랐다.
소년은 왠지 그날 잠을 더 잘 잤다. 그만큼 갈증은 더 심해졌다.
소녀가 또 꿈에 찾아오는 바람에 소년은 잘 자고 일어나서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그 순간 터널 끝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소년은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일으켜 빛을 향해 걸었다.
걸음이 빨라지던 소년 앞에 어느순간 불빛이 켜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러자 터널은 더욱 어두워졌다.
소년은 두려웠다. 심지어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드디어 미친걸 거야.'
소년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다리가 심하게 떨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 했지만, 소년은 막대기를 단단히 부여잡고선 간신히 버텨냈다.
그때 다시 불꽃이 튀었다.
삽시간의 불꽃 뒤로, 흰 장발의 노인이 희미하게 보였다. 노인은 두개의 돌을 부딪혀 불꽃을 만들고 있었다.
"얘야. 울지만 말고 거기 바닥에 버려진 실들 좀 내게 건네주렴."
노인은 소년이 건넨 실뭉치에 불꽃을 튀겨 불을 만들었다.
소년은 신기한 듯 멀리감치에 서서 굶주린 짐승처럼 노인의 행동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추울텐데 여기 앉아 불 좀 쬐려므나."
소년은 모처럼 만난 불이 낯설어 잠시간 망설였다.
터널 속에서 따스함을 느낀 건 소녀의 품안에서 잠들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바람에 소년은 소녀가 다시 그리워졌다.
"선택했다면 그것만 보거라. 물론 가장 힘든 일이겠지만..."
소년은 노인의 말이 그저 쉽게 내뱉은 말일뿐일 거라 생각했다.
말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어진 소년을 바라보며, 노인은 자신의 작은 빵과 물을 나눠주었다.
소년은 짐승처럼 노인의 빵과 물을 받아먹었다. 그러다 문득, 노인이 반대편을 다녀왔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글쎄. 니가 가진 막대기를 내게 준다면 가르쳐줄 수도 있지."
소년은 드디어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불의 온기도, 또 빵과 물을 나눠준 노인도 모두 환영이거나 꿈일 거란 생각을 했지만,
눈 앞에 불이 있어 그제야 보여지는 다리의 상처를 보자, 어쩌면 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 나은 상처가 보기에 썩 좋진 않았지만 걷기에는 충분해보였기에, 소년은 망설임없이 막대기를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고맙구나. 이 막대기 덕분에 우린 불을 몇 분 정도 더 쬘 수 있게 됐구나. 나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
"할아버지. 저기엔 무엇이 있나요?"
"저기엔 말이다... 굉장한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단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소년은 온기에 기운이 되살아났는지 질문에 힘을 실어 다시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에게 저기는 어떤 곳이었죠?"
"그건 누가 말해줄 수 있는 곳이 아니지. 내가 보았다 한들, 그건 네 것이 아니거든. 그건 네가 직접 보고 느껴야야할 것들이지. 행여 누가 네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려주는 이가 있다면,
그런 사람들을 반드시 조심하거라. 그들은 다른 이의 꿈을 먹고 산단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소년이 다시 반문했다.
"네 꿈을 반드시 지키렴. 저기가 어떤 곳인지는 오로지 너만 알 수 있는 거니까. 누구에게나 다 그렇듯이 말이다. 우리는 모두가 같다고 믿지만, 정작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 또한 같거든. 반드시 네가 보아야할 곳일테지. 너만의 곳이란다."
"그럼 할아버지는 왜 터널 안에 계신가요?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서 이곳에 머물러있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글쎄. 지금 생각해보면 저기는 굉장한 곳이었지. 하지만 그땐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을 두고 왔다 생각했단다. 그래서 돌아가던 길이었지."
소년은 노인이 저기를 다녀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믿음대로라면, 터널의 반대편은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어야했기 때문에...
"금방 돌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전 이렇게 어리잖아요. 돌아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다는 증거죠."
"글쎄. 내가 저기에서 여기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결심했을 때가 꼭 너만한 때였지."
"말도 안돼요!"
소년은 노인의 정체에 대해 확신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사기꾼이야. 괜히 막대기만 주고 말았어.'
그때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어디에도 있단다. 뭔가를 간절히 바란다면, 아주 가까이에서도 쉽게 찾을 수가 있지. 만약 그 절실함이 반드시 네게 좋은 것이라면 말이다."
소년은 뜨끔했지만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말도 안돼요. 할아버지가 바보에다 길치가 아니라면 말이에요."
"말이 안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단다. 늘 그렇듯 돌아가는 길은 더 멀고도 험한 법이지. 거기 막대기나 좀 더 건네주렴."
노인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소년이 고갤 돌리자, 아까 보지 못했던 나뭇가지 하나가 소년의 옆에 놓여 있었다.
소년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아깐 분명히 없었어요."
"그래? 아마도 너는 나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나 보구나. 내 눈엔 조금 전부터 저 나뭇가지만 보였거든. 나는 그저 너와 함께 조금 더 시간을 보내며 따뜻하게 이야길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그건 너와 내게 둘 다 좋은 일일테니 말이야."
소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을 삼키고 나자, 조금 전 먹은 빵의 풍족함과 함께 몸과 마음이 곧 편안해졌다.
불이 다시 한 번 크게 타오를때까지도, 노인의 굳게 다문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점점 따스해지는 불빛을 바라보며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그럼 전 돌아가는게 나을까요?"
"무엇이든 네가 결정해야할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널을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네겐 충분히 값진 경험이 되었을테지. 선택은 언제나 네 문제란다. 네 시간은 오로지 너만이 가질 수가 있지.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어떤 선택에도 옳고 그름은 정해져있지 않은 법이니까."
"그럼 전 어떡해야하나요?"
"어느 쪽을 택해도 결국 후회는 따르기 마련, 마찬가지로 어느 쪽을 가도 좋은 것은 늘 있기 마련이다. 네 세상은 네가 보는대로 움직인단다. 그걸 잊지 말거라. 만약 네가 여기까지 오며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면, 내 말을 듣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당연히 그건 아닐 테지. 넌 이미 좋은 것들을 너무나 많이 놓치고 있구나. 어느 쪽이 좋았는지는 네 스스로 생각해보렴. 그것은 의외로 네 마음 아주 가까이에 있거든. 오직 너만이 알고 있을 테지."
소년은 노인을 노려보았다. 왜냐하면 방금도 소녀를 생각하며 같이 돌아가지 않았던 것을 잠시 후회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긴 호흡을 가다듬고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만큼 들어온이상, [지금 여기]로 돌아간다는 것 또한 그만큼의 고통과 시간이 따른다는 것 또한 명심하려므나."
소년은 오랫동안 곰곰히 생각하던 중 모닥불의 온기에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노인은 소년에게 낡고 헤진 담요를 덮어주었다.
소년은 꿈속에서 그가 도착하게 될 터널의 반대편을 보았다.
그곳에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 위로 자라난 무성한 과일나무들, 그 주변으로 맑은 개울이 흘렀고 하얀 말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며 평화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피부색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복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 무리 속에는 소녀도 함께 있었다.
소년이 잠에서 깼을 때, 노인은 약간의 음식과 담요를 남겨둔 채 이미 떠나고 없었다. 소년은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선 다시 걸었다. 왠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난 밤 꿈 덕분이었다. 그것은 사실 헛된 희망이었지만, 그것이 소년에겐 또 다른 동기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노인을 만난 후로 소년은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고, 알 필요조차 없었다. 그때쯤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과 음식이 떨어져 숨조차 쉬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울 때면,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남긴 물병이나 버리고간 배낭 따위가 늘 주변에 남겨져 있었다.
다리가 저려올 땐 가까운 곳에서 지팡이를 대신할만한 막대기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소년은 그때마다 노인의 말을 생각했다.
'뭔가를 간절히 바란다면 아주 가까이에서도 쉽게 찾을 수가 있지. 만약 그것이 반드시 네게 좋은 것이라면 말이다.'
소년은 생각했다.
'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거겠지? 아직까지 죽지 않은 걸 보면 말이야. 하지만 터널 끝에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그 말 또한 사실이면 난 어떡해야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 걷고 있는 걸까?'
길고 지루한 시간동안 소년은 걷고 또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소년은, 컴컴한 터널을 홀로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삶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했다.
지칠 때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기적같은 소소한 사건들은 늘 그와 함께 했고, 그저 걷고 있는 이 시간 역시 그리 나쁠 게 없다고 그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걷는데는 그런 생각만으로도 충분했다.
소년은 이윽고 자신이 왜 터널을 들어오게 되었는지조차 잊은 상태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아예 그런 질문조차 필요없는 상태로, 그저 고요한 상태로 천천히 걷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걷고 있었다.
소년의 마음 속에서 그 어떤 목적들이 모두 사라진 그 순간, 터널 끝에서 하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년은 대단히 놀라지도 않은 채로,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선 반대편 끝을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목 깊은 곳에서는 메마른 탄성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소년은 그 사실조차 스스로 알지 못했다.
소년은 뛰지 않았다. 이제껏 그래왔듯, 소년은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다시 천천히 걸어나갔다. 마음 역시 걸음만큼이나 차분했다.
터널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자, 소년은 갑자기 온몸이 저리고 두 눈이 녹아버릴듯한 통증을 느꼈다.
소년은 두 눈을 감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선뜻 밖으로 걸어나갈 수 없었기에, 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소년은 그만큼이나 오랜 시간동안 어둠 속에서만 살았던 것이었다.
반대편 입구에 발을 내딛는 순간, 소년은 그제야 손가락 사이를 서서히 벌리며 조금씩 눈을 떴다. 그리고선 새롭게 맞이한 [지금 여기]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소년의 눈을 가린 시커먼 두 손 안이 따뜻해졌다. 소년은 멈춰선 채로 그저 울기만 했다.
새로운 [지금 여기]는, 오래전에 떠나왔던 그곳과 다를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소년은 차마 다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소년은 차라리 그 모든 것들이 꿈이길 바랬다.
소년의 머릿속에선 오히려 걷고 있던 시간들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는 적어도 그의 마음 속에 희망이란 것이 있었으니까...
오랫동안 닫혀있던 소년의 두 눈꺼풀은 아직도 열리지 않는채로 따가운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얼굴을 부여잡고 한참을 말없이 서있던 소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먼 발치에서 소년보다 키가 조금 더 큰 남자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의 뒤로 보이는 강렬한 햇빛에 더불어, 소년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소년의 눈에는 그저 그 남자가 어떤 형체처럼 어렴풋한 빛덩어리로만 보여질 뿐이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입을 닫고 살았던 소년은, 한마디 인사도 없이 남자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지금 여기지."
"전 지금 여기에서 왔는걸요."
"그곳은 네가 지나온 지금 여기였고, 이곳은 네가 새로 찾아온 지금 여기란다. 네 시간은 결국 그 순간만 존재하니까 말이야."
"당신은 누군가요?"
"너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해 오랫동안 널 기다린 사람이지."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띈 채 두 팔을 내밀어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모든 기운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모를 친숙한 느낌이었다.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나 역시 너무나 오랫동안 너를 기다려왔단다. 난 네가 오지 않을거라 생각하면서도, 네가 포기하지 않길 간절히 바랬는데, 이렇게 네가 와주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전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요."
"그래. 알고 있단다. 나도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전 간절했어요."
"그래. 간절함.. 혹시 기대감을 가졌던 게 아니니? 사람들은 그 두가지를 오해할 때가 많거든. 기대감은 대부분 실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아픔을 낳거든. 그건 간절함과는 다른 문제란다. 간절함은 오직 너를 위한 것이 될 수 없거든."
소년은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며 눈을 감았다. 다시금 많은 것들이 그리워졌다. 그의 앞에 선 남자는 그저 소년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안아줄 뿐이었다.
소년은 반항하려 애썼지만 왠지 모를 따스함에 이끌려 남자의 소맷자락을 힘껏 끌어당겼다.
어릴적 지나온 [지금 여기]에서 느꼈던 아버지의 품과도 같은 포근함이었다.
소년은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비록 남자의 옷이 젖을까 걱정했지만...
남자는 소년의 마음을 안다는 듯 연신 괜찮다는 말만 했다.
"그래. 이젠 괜찮아.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단다."
소년은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음을 느꼈다.
남자가 따뜻한 손길로 소년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터널 밖의 빛이 제법 익숙해지자, 소년은 눈을 한 번 비비고는 고개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적당한 장발에 제법 까칠하게 수염을 기른 멋진 남자였다.
소년은 그를 보며 야릇한 익숙함을 느꼈다.
"괜찮아. 놀라지 마."
소년이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자, 남자가 소년의 말을 끊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네가 생각하는게 맞거든."
"아뇨. 그럴리가 없어요. 아저씬 저보다 키도 크고 멋있는걸요."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구나."
"정말 그런걸요."
"진심으로 다행이구나."
"아저씬 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요?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요."
"난 오랫동안 지금 여기에서 널 기다려왔단다. 네 어려운 선택과 노력 덕분에 드디어 우리가 만나게 된거야. 오늘은 널 위한 날이란다."
"하지만 전 전혀 기쁘지가 않은 걸요. 이제 전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널 기다려주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널 그리워하기도 하지."
"아저씨도 혼잔가요? 저처럼 말이에요."
"그럼. 늘 혼자일 수 밖에. 누군가 곁에 있어도 우린 결국 혼자일 수 밖에 없거든.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함께 만나려고 노력하는게 아닐까?"
"전 모르겠어요. 그것 역시도 제가 알게 되나요?"
"넌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전 혼자가 싫은 걸요."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란다."
"그럼 아저씨와 함께 있어도 되나요?"
"나도 그러고 싶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날 기다렸다면서, 아저씨도 혼자가 싫다면서, 왜 안된다는 건가요?"
"난 다시 가야하거든. 네가 기나긴 터널을 건너왔듯, 나 역시 더 어둡고 긴 터널을 다시 지나가야하니까. 우린 끝없이 그 터널들을 지나가야 한단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지."
"하지만 전 이제 겨우 도착했는걸요."
소년은 다시 울먹거렸다.
"네가 도착했기 때문에 내가 떠날 수 있는거란다. 만약 네가 오지 않았다면, 난 평생 지금 여기에만 머무르게 되었을거야. 네가 와주어서 참 다행이야."
"뭐가 그렇게 다행이죠? 그럼 아저씬 어디로 가나요?"
"네가 지나온 곳과 비슷한 터널이지. 아마 그 끝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난 다시 그를 만날 수 있겠지."
"누구 말인가요?"
"내가 널 기다려왔듯, 날 기다리고 있을 나보다 더 멋진 사람일 테지."
"하지만 지금 여기처럼 저기 역시 아무것도 다를게 없으면요? 아저씨가 그를 만난다해도 그 역시 곧 바로 떠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가야지. 그가 다음 길을 가도록 내가 도와줘야지. 넌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여기며 지금 여기를 바라보고 있구나. 다시 한 번 네가 서 있는 지금 여기를 천천히 둘러보렴."
"전 모르겠어요. 전 이제 어떡해야하나요?"
"곧 알게 될거야. 그저 믿고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가렴."
"왜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곧 알게 될거란 말만 하는거죠?"
"그건 어느 누구도 가르쳐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네가 누구인지는 네 자신밖에 모르거든."
"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걸요."
"그건 모든 생명들의 숙제지. 지쳐보이는구나. 우선 조금 쉬는게 어떻겠니? 저기 물가로 가 깨끗히 씻고 오렴.
그리고 네 얼굴을 천천히 다시 살펴보렴. 그러면 너도 곧 알게 될테니까. 우리 모두는 이미 너무 닮아있으니까."
소년은 뭔가 말을 하려다 참고서는 그 남자의 말대로 물가로 다가가 옷을 벗었다. 그는 씻고 나면 멋진 아저씨로부터 이젠 어떡해야할지에 대해 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벌거벗은 소년은 한참동안 고갤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년은 아랫배 쪽에 돋아난 옅은 갈색 털을 보고는, 순간 오랫동안 씻지 않아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물 속으로 걸어가 가슴까지 물이 찼을때 소년은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다시 한발 더 들어가 물에 비친 형상을 고개 숙여 꼼꼼이 살펴보았다.
그것은 더이상 초췌한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수면에 비친 형상은, 분명 소년이 방금 만난 남자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소년은 그렇게 기나긴 여행동안 스스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물에 비친 자신을 내려다보며 얼굴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보았다.
코도 제법 높아져 있었고 수염도 제법 자라나있었다.
그의 눈에 보여지는 세상은 다르지 않았지만, 정작 소년 자신은 그만큼 성장해버린 것이다.
훌쩍 커버린 소년의 코끝으로 익숙한 꽃향기가 스쳐지났다.
그가 떠나온 [지금 여기]에서 자주 향기 맡았던 유채꽃이었다. 그것은 소년이 가장 좋아했던 꽃향기였기에, 다시 만난 그 향기는 무척이나 달콤하고 정겨웠다.
소년의 입가에서, 모처럼 미소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소년을 기다려왔던 남자는 또 다른 터널의 입구 앞에 서서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앞으로 누굴 만나게 될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남자는 예전에 지나온 터널보다 한층 더 큰 터널의 문을 힘껏 열었다.
실패 따위는 챙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물병과 약간의 음식 외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남자는 마음 속에는 오로지 간절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당연히 그 스스로는 그것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알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그런 상태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것이었다.
남자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또 다른 [지금 여기]를 향해 힘차게 첫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소년의 상처를 먹었던 구더기들이 이제는 나비가 되어 세상을 향해 작은 날개짓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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